[인쇄술의 기원] 서양의 서사재료


서양에서도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서사 재료가 사용되었다. 원시시대에는 바위나 동굴의 벽, 짐승의 뼈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고대에 들어 와서는 점토판이나 파피루스가 사용되었으며, 양피지(羊皮紙)는 동양에서 제지술이 전해지기 전인 12세기 경까지도 널리 사용되었다.
 
 
파피루스에 인쇄한 고대 이집트 투탄카멘(Tutankhamen) 왕의 황금마스크.
고대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여러 장 이어서 두루마리로 하여 문서를 기록하였다.
 
 
점토판은 고대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서사 재료 중의 하나로 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그 주변 지역에서 설형문자를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다. 부드럽고 유연한 진흙을 알맞은 크기와 형태로 빚어서 나무나 뼈, 또는 쇠붙이로 된 철필로 문자를 새긴 다음 불에 굽거나 태양 빛에 말렸다. 글씨를 새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내용을 첨가해서 기록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진흙이 마르지 않도록 젖은 천으로 싸서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점토판은 직사각형인데 대개 폭이 2∼3인치, 길이가 3∼4인치, 두께가 1인치 정도이다. 그러나, 그 크기와 모양이 매우 다양하여 삼각형, 원형, 원추형의 것도 있으며, 공문서나 법률 기록, 계약, 약속어음 같은 데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하지만, 점토판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하나의 책은 수십 내지 수백 개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보관과 열람이 매우 불편하였다. 그럼에도 보존성은 매우 특출하여 현존하는 것 중에는 고대 바빌로니아나 앗시리아 지방에서 발굴된 기원전 4천년경의 점토판도 있어 당시의 문헌 연구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파피루스(papyrus)는 식물의 줄기를 잘게 쪼개고 이것을 종횡으로 놓아 끈끈한 액으로 밀착시킨 것으로 그 원료 자체가 부스러지기 쉬워서 보존하는 데는 적당치 못하였다. 파피루스는 원래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늪지대와 삼각주 지역에 많이 자생했던 다년생 식물인데, 현재는 거의 소멸되고 나일강 상류지역 등지에 약간씩 남아 있다.
 
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겉껍질을 제거하고 속대를 얇게 쪼개어 가로로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다시 세로로 늘어놓은 후 압력을 가하면 내면의 끈끈한 진으로 인해 접착이 되며, 이를 햇볕에 말린 다음 상아나 조개 등으로 문질러서 광택을 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파피루스는 노르스름한 백색인데, 나중에는 누런 색으로 변하게 된다.
 
파피루스는 양쪽을 모두 사용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잘 접착되어 필기가 가능한 한쪽 면만을 사용했으며, 사용된 갈대의 크기에 따라 종류나 품질이 매우 다양했다. 그 중 품질이 좋은 것은 문서 등을 기록하는데 쓰였고, 질이 낮은 것은 포장지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반적인 파피루스는 폭이 9∼11인치, 길이가 5∼9인치인데, 이러한 것을 20개 이어서 만든 두루말이가 표준 규격이었다.
 
필사하는데 사용된 잉크는 기름의 그을음에 고무 용액을 섞어서 만든 검은 잉크와 빨간 진흙이나 산화철로 만든 빨간 잉크가 사용되었고, 필사 도구로는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를 연필 모양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처음에는 주로 낱장으로만 쓰이다가 각 장을 연결시켜 두루말이로 만들었는데, 사용하기가 편리하고 기록면도 넓어서 널리 사용되었으나 습기에 매우 약하고 보존성이 낮은 결점이 있었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국가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로마시대에는 파피루스가 책의 출판 뿐만 아니라 법률이나 외교 문서에도 사용되었고, 양피지나 종이가 사용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인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양피지는 송아지나 양,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질기고 부드러운 서사 재료였는데, 기원전 500년경부터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방은 물론 페르시아와 아시아 지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제조 방법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했는데, 일반적으로 우선 가죽을 씻어 석회로 소독을 하고 나서 털을 깎은 후 무두질을 하면서 가죽을 늘리는 한편 경석으로 광택을 냈다. 이러한 가공 기술은 점차 발달하여 3세기 경의 로마시대에는 자주 빛으로 염색하는 기술이 발달했으며, 4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의 서사 재료를 독점하게 되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의 최대 결점인 약한 내구성을 해결해 장기 보존을 가능하게 했지만 값이 비싸고 재료도 한정되었다. 따라서, 수요가 생산보다 많아진 8세기부터는 가격이 점차 오르자 옛날 문서의 내용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이중 사본도 성행하였다. 필기도구로는 깃촉 펜이 사용되었다.
 
유럽에 종이가 전래되기 전까지 가장 보편적인 서사 재료로 쓰인 양피지는 파피루스의 두루말이형에서 현대 도서와 같은 책자본(冊子本 ; codex) 형태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책자본은 양피지를 네모나게 자른 다음 쪽 배열을 한 것인데, 이는 오늘날의 책과 같은 특징을 갖추게 되어 학문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피지 필사본은 4세기 이래 1천여 년이 지나는 동안 성직자들의 손을 거쳐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및 유태교의 세계에까지 사상을 널리 전파하거나 보존하는 보편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종이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한동안 책의 제본이나 장식 등에 부분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종이의 발명에 앞서 인류는 보다 나은 서사 재료의 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이들 대부분이 보존성이나 필사의 용이성, 경제성 등에서 서사 재료로서의 필요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 이러한 결점을 해소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가 마침내 획기적인 서사 재료인 종이의 발명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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