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의 기원] 종이의 발명과 전파


지금은 책이나 기록물이라면 으레껏 종이를 떠올리게 되지만 인류가 종이를 사용하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랜 일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했던 서사 재료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러나 종이의 발명에 앞서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서사 재료들은 모두가 서사 재료로서의 필요 충분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것들이어서 인류는 끊임없이 보다 우수한 서사 재료 개발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결과 마침내 획기적인 서사 재료인 종이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종이는 죽간이나 목독은 물론 점토판이나 금석(金石)보다도 훨씬 가볍다. 또한 비단이나 양피지보다도 값이 싸고 날로 늘어나는 수요에 충당하기도 쉬웠다. 인쇄술은 인류가 종이를 발명함으로써 비로소 싹트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종이는 인쇄술과 더불어 지식의 보급에 일대 변혁을 가져 왔으며, 종교개혁과 문예부흥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후한서(後漢書)≫의 <환관전(宦官傳)〉에 나오는 종이 발명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후한의 원흥(元興) 원년인 105년에 채륜(蔡倫)이 나무껍질과 마(麻), 헌 헝겊, 어망 등을 물에 불려 찧어서 종이를 처음으로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 기계로 나무를 빻고 백토 등을 가하여 망(網)을 통해 펄프 형태로 처리하는 현대식 제지법과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
 
종이는 당시까지 서사 재료로 사용되던 죽간이나 비단보다 훨씬 우수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제지술 또한 빠른 속도로 진보하였다. 초기의 종이는 단순하고 투박한 풀을 먹이지 않은 섬유의 그물에 지나지 않았으나, 기술이 진보하면서 먹을 잘 흡수하도록 종이 표면에 이끼로 만든 아교풀이나 녹말풀을 먹이고 석고를 입혀 희게 한 제품도 나왔다. 이러한 개량은 이미 제지술이 아라비아에 전해지기 전에, 그리고 목판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 이루어졌다.
 
제지술은 발명된 이후 약 5백년 후인 593년 고구려 영양왕 때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활용되었으며, 신라 진흥왕 때부터는 국사를 기록하는 데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고구려의 승려인 담징에 의해 610년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양에는 그보다 훨씬 뒤인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지술이 전파되었다. 당나라와 사라센 제국이 중앙 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을 놓고 패권을 다투었을 때 포로로 잡혀간 중국인 제지 기술자에 의해 757년 사마르칸트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졌다. 제지술은 12세기경 무어인에게 전파되어 당시 그들이 정복하고 있던 스페인에 전해짐으로서 유럽 지역에도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생겨났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이나 영국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쇄술은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야 생겨나게 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종이는 인류 문화 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셈이다.
 

 
   
 
(04031)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15길 12, 5층 (서교동, 인쇄문화회관) 찾아오시는 길
전화번호 : 02-335-5881, 팩스번호 : 02-338-9801, E-MAIL : assn@print.or.kr
Copyright ⓒ 2005 KOREAN PRINTERS ASSOCI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