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술의 기원] 인쇄술 발명의 의의


인쇄술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필사본 시대에서 마침내 간본(刊本)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이 사실은 인류 문화사에 있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인쇄술의 등장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쉬워졌으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여 보다 싼값으로 책을 구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었던 교육과 지식의 보급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변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인쇄술의 보급은 서구 사회에 있어 정치적으로는 절대 왕권사회가 근대 시민사회로 바뀌는 원동력이 되었다. 종교적으로는 성서의 보급을 확대시켜 마침내 종교개혁까지 가능하게 했으며, 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자유주의가 싹트게 되었다.
 
《인쇄의 5백년》이라는 책을 저술한 스타인버그(Steinberg, S. H.)는 인쇄술로 인해 사회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전제하면서, "정치·법률·교회 그리고 경제에 관한 일들과 사회학적·철학적·문학적인 운동도 인쇄술이 끼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인쇄술은 교육의 보급과 종교개혁 나아가서는 문예부흥의 길을 열게 하였으며, 근대사회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변혁들은 모두가 정신문화를 수용해서 메시지화 하고 널리 보급시킬 수 있었던 인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인쇄물을 통해 사상이나 이념을 널리 전파할 수 있었고, 기존의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시킴으로서 지식과 정보를 확대, 재생산시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쇄술은 또한 언어나 지적 개념의 표준화를 가능하게 했다. 유럽에서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수도원이나 대학에서 사용하는 책은 모두 손으로 써서 만든 필사본이었다. 필사본은 오랜 기간 되풀이되면서 베껴지는 사이에 잘못 표기되는 경우도 있었고 지역이나 저자에 따라 용어의 개념이 달리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인해 법률과 언어와 지적 구성 개념이 규격화되고 표준화 된 서적들이 대량으로 보급될 수 있게 됨에 따라 학문과 인식의 방법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쇄술의 등장은 책을 제작하기 위한 노동 시간의 감소와 생산비를 크게 절감시켰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할 당시만 해도 파리에만 4천여 명의 필사생(筆寫生)이 있었는데, 인쇄술의 등장으로 직업을 잃게 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기술에 대해 갖가지 방해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17세기 유럽의 인쇄사. 필사에 의해 전해오던 기록들이 15세기 중엽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발명으로 인해 새로운 활자인쇄 문명이 각국에 확산되었다.
 
 
인쇄술은 또한 새로운 작업 구조와 작업장을 출현시켰다. 유럽에서 초기의 인쇄를 할 때는 성직자나 수도사가 직접 편집이나 교정을 맡아 일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대학 교수들도 이같은 일을 함으로서 금속을 다루는 장인이나 기계공들과 접촉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는 여러 가지 지식과 기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보다 밀접한 접촉을 가져 왔고 서로 다른 문화의 교류를 촉진하는 재조직화가 가능케 됨으로서, 지적 노동의 경계가 제거되고 두뇌와 손재주가 결합한 새로운 방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인쇄술은 출현 이후 처음에는 기존의 방식들과 상충되면서 적지 않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시간과 인력을 대체할 수 있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신기술로 인식되어 널리 보급됨으로서 사회 전반에 거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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